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프란치스코(교황)/한국 방문 (문단 편집) === 세월호 유족 직접 [[세례]] === 세월호 참사로 세상을 떠난 단원고 2학년 이승현 군의 부친 이호진 씨가 교황에게 직접 [[세례]]를 받았다. 다음은 세례를 받게 된 과정이다.[[http://www.facebook.com/hankyoreh21?ref=stream|출처]] >[[8월 15일]] 800km 길 끝에서 만난 교황에게 아버지는 "I love you, I love you(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라고 인사하며 그의 손에 입을 맞췄습니다. 교황은 아버지의 머리에 손을 얹고 축복했습니다. “2천리 180만 보를 한발 한발 기도하는 마음으로 내딛었습니다. 교리를 배우지 않았지만 세례를 받을 자격이 있지 않습니까.” 교황은 "자격이 충분합니다”고 답했습니다. "교황님께서 직접 세례를 주십시오." > >[[8월 17일]] 오전 7시께 주한교황청대사관 안. 세례를 받을 작은 성당에 도착한 아버지는 기도를 드렸습니다. 한참 만에 눈을 떴는데 인기척이 느껴졌습니다. 뒤돌아보니 교황이 바로 옆에 서 있습니다. 기도하는 아버지를 방해하지 않으려고 교황이 숨죽이고 그곳에서 잠시 기다렸던 것입니다. 2번째 만남이라 더욱 반가왔습니다. 아버지는 "건강하셔야 합니다"라고 여러 차례 진심으로 말했습니다. "고맙습니다." 교황이 화답했습니다. > >"교황에게 직접 [[세례]]를 요청한 용기에 감복했습니다. 처음에는 놀랐지만 그 간절함에 마음이 움직였습니다. 2천 년 [[가톨릭]] 역사상 교황이 평신도에게 세례를 주는 일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아들을 잃은 아버지에게 교황마저 등을 돌리면 큰 좌절감을 느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이례적인 결정을 내렸습니다. 혹시라도 한국에 머무는 동안 세례를 하지 못할까봐 수행원들에게 직접 아버지 연락처를 챙기고 일정을 조율하라고 당부했습니다." > >교황의 다정한 말씀에 아버지는 눈물을 흘렸습니다. "하늘의 별이 된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 아이들을 기억하고 기도해주십시오" 교황은 "그렇게 하겠습니다."라고 거듭 약속했습니다. 교황의 왼쪽 가슴에는 유가족이 선물한 세월호 노란 리본 배지가 빛나고 있습니다. 아버지는 이날 '''이호진 프란치스코'''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그렇습니다, 세례명은 [[프란치스코 교황]]을 따랐습니다. 아버지는 다짐합니다. "[[가톨릭]] 신자로서 신학공부를 열심히 하고 몸가짐도 더욱 바르게 세우겠습니다." || [[파일:세월호 유족 직접 세례.jpg|width=100%]] || || '''이호진 씨에게 세례를 주는 교황''' || '''이호진 프란치스코'''는 8월 18일 [[가톨릭]] 신자로서 대한문 [[미사]]에 처음 참례하게 됐다. 1989년 방한 당시 [[성 요한 바오로 2세]]는 12명의 청년에게 세례를 주었다고 하며, 이호진 씨는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세례를 받은 최초의 [[한국인]]이 되었다. 이호진 씨는 세월호 유족으로 딸과 함께 [[십자가]]를 들고 전국을 누빈 것으로 유명하다. 교황이 오시자 그에게 십자가를 전달했는데 언론 인터뷰에서 "체력만 받쳐주면 더 돌고 싶었는데 그게 끝나자 너무 허탈합니다!" 라고 언론 인터뷰에서 밝혔다. 이때 본인이 직접 세례를 요청하였지만 이 사실은 언론에 알리지 않았다. 세례 받은 이후에야 언론 인터뷰에서 본인이 세례 요청했다는 사실을 알렸다. [[천주교]]에서는 교리 공부를 해야지만 세례 받을 자격이 있다. 그러나 이호진 씨는 교리 공부 중에 세월호 참사가 나서 공부가 중단되었다고 한다. 언론에서는 교황이 형식에 치우치지 않고 과감한 결단을 내렸다고 평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